-
듄, 불가사리, 영화리뷰, SF 영화, 괴수물, 다시 만나는 (미래) 세계영화리뷰 2023. 4. 3. 01:14728x90
다시 만나는 (미래) 세계
여전히 마스크를 쓰고 돌아다니는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창궐하지 않았다면 우리의 지난 3년은 어땠을지 생각해 봅니다. 빗겨 지나간 미래는 또 다른 평행세계의 우리가 아닐까 상상하며 우리 곁을 스쳐 지나간 SF 영화 두 편을 추려봤습니다.
1.듄
올해는 역시나 제게 바쁜 해였습니다. 서울에서 청주로 다시 서울로 오가며, 잦은 이동과 육체노동으로 점철된 한 해였습니다. 청주에서 다시 서울로 올라오기 위해 짐을 싸며, 청주에서 만들었던 콘크리트 작업을 부수었습니다. 모래와 먼지들을 피해 마스크를 쓰고 망치와 끌로 작품을 부수었습니다. 쿵쿵쿵.. 먼지와 소음을 들으며 영화 듄의 한 장면을 떠올렸습니다.
듄의 한장면 영화 듄(Dune,2021)은 아트레이데스 가문의 후계자 폴이 행성 아라키스에서 하코넨 가문의 위협을 피해 살아남아 자신에게 주어진 여정을 위해 떠나는 과정이 담겨있습니다. 폴의 가문 아트레이데스는 황제의 질투를 사 멸문당하고, 행성 생태학자 카인즈 박사는 황제로부터 침묵을 명 받았지만 폴을 돕습니다. 폴을 돕던 중 카인즈 박사는 사다우카의 추격자들을 만나자 아라키스의 모래바닥을 두드려 진동을 발생시킵니다. 그 덕에 모래 벌레에게 모두 빨려 들어갑니다.
광활한 아라키스의 사막과 빛나는 스파이스는 특히나 마치 드넓은 바다와 그 위의 반짝이는 윤슬처럼 아름답습니다. 카인즈 박사가 모래바닥을 두드리는 소리는 마치 수조 안에서 물 밖의 강한 진동을 느끼듯이 영화관 전체를 강하게 울렸습니다. 저는 그 장면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한낱 괴물로 보이는 모래 벌레를 신이라 여기며 함께 모래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모습을요. 카인즈 박사는 자신의 주인만을 섬기며 그의 이름은 샤이 훌루드라는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카인즈 박사는 사다우카 추격대와 함께 죽음을 택하며 자신의 주인에게 돌아갑니다. 저는 이 부분이 묘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파멸로 이끄는 초자연의 힘을 숭배하는 마음을 모릅니다. 두려움은 두려움으로 시작되고 끝날 뿐, 섬기는 마음이 피어나는 것을 상상해 본 적이 없습니다. 마치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랄까요.
저는 청주의 레지던시에서 작업을 해체하기 위해 망치질을 수없이 해대며, 어느 곳에서든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서울의 상가주택에 있는 작업실에서도 이렇게 할 수 있을까요. 작품을 만들고, 보관할 곳이 여의치 않아 부수는 일은 몸과 마음이 소모되는 일입니다. 하지만 달팽이처럼 등 뒤에 지고 살아갈 수 없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런데 재밌는 점은, 작업을 부수기 위해 난도질하는 순간, 진동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흥분되고 상기된다는 것입니다. 진동 발생기 쪽으로 가던 모래벌레를 다시 유인하듯이, 망치질을 하면 다시 작업을 하는 것처럼 마음이 유인되는 것이죠. 다시 시작할 수 있게요.
이제 저의 새 작업실 위에는 피아노 학원이 있습니다. 저의 작업 소음이 피아노 음률에 가려지길 바라며 아라키스 사막의 진동 소리를 떠올려 봅니다.2. 불가사리
듄(Dune, 2021)의 모래사막을 보고 있자면, 떠오르는 영화가 있습니다. 폴이 어머니 제시카와 함께 모래 벌레를 피하기 위해 모래 걸음을 걷고 바위 위로 올라가는 모습에서 어떤 영화가 떠오르지 않으시나요? 바로 불가사리(Tremors, 1990)에서 멀과 발렌타인, 론다가 지하 괴물을 피하는 모습이요. 진동에 반응하는 괴물은 멀과 발렌타인, 그리고 마을 사람들을 위협합니다. 전화가 끊기고 사람들이 하나씩 사라지자, 이상한 낌새를 느낀 멀과 발렌타인은 구조를 요청하러 갔다가, 괴물을 보고 다시 마을로 돌아옵니다. 괴물을 피해 지붕 위로 올라가고, 바위 위로 도망쳐 괴물을 유인합니다. 열화 된 화면과 극화의 말투 너머로 보이는 네바다 사막이 담긴 영화는 과거의 공상과학 영화 기술을 보여줍니다. 어렸을 적, 통통한 브라운관 너머로 본 불가사리의 모습은 촌스럽지만 강렬했습니다. 저는 늘 이 영화를 보며 나초와 치즈 소스가 난무하는 영화라고 느꼈습니다. 사막 위로 펼쳐진 모래와 선인장을 보며 불현듯 떠올렸을 수도 있지만, 나초와 치즈는 불가사리의 몸 자체였습니다. 불가사리가 터지면 내장이 흘러나오거든요. 육즙이 터지듯이 흘러넘치는 치즈 같은 불가사리의 모습은 볼록한 화면 너머 가득한 사막 안에서 가장 강렬한 오렌지빛이었습니다.
트렌트 예측 회사인 WGSN은 2023년의 색으로 Digital Lavender, Luscious Red 그리고 Sundial 등을 발표했습니다. 아직 도착하지 않은 새해로부터 전해진 색상표 중 사막의 모래 빛이 가득한 Sundial 색을 보며 저는 다시 불가사리가 떠올라 불안해졌습니다. 저는 광활한 사막에 가본 적이 없기에, 사막이 나오는 영화를 보면 망망대해에 떨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매드맥스:분노의도로(Mad Max: Fury Road, 2015)에서 퓨리오사가 녹색의 땅을 향해 떠나는 것을 볼 때도, 바그다드 카페(Bagdad Cafe, 1987)에서 야스민이 남편에게 버려져 캐리어를 끌고 갈 때도,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 2007)에서 사막의 마켓에 안톤이 등장하는 장면을 볼 때도요. 아무에게도 도움을 청할 수 없고 이대로 날이 밝을 때까지 기다려야만 하는 무력감을 느낍니다. 타오르는 갈증까지도요. 모래 위로 보이는 희미한 지평선을 상상하면 나를 구하러 올 구원자가 영원히 도착하지 않을 것만 같습니다. 듄에서 폴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계시 속 구원자가 되어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는 데에 반해, 불가사리의 멀과 발렌타인은 오지 않는 구조대 대신 스스로 마을의 구원자가 되길 자처합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불가사리를 유인하여 마을을 구해내죠. 오지 않는 구원자 대신 스스로를 구할 수밖에 없는 마음은 때론 작업할 때와 비슷하다고 느껴집니다. 이 상황에 처한 이유도, 이 상황도 나만이 오롯이 이해할 수 있기에 내가 스스로 빠져나가야 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번에 구조 요청에 성공했습니다. 청주 스튜디오의 전시장은 매우 높고 넓습니다. 저는 도저히 혼자서 설치할 수 없어서 주변에 S.O.S. 요청을 보냈습니다. 서울에서 달려온 친구들 덕에 모든 일은 순조로이 끝났습니다. 도움 요청에 성공했을 땐, 이미 모든 일이 끝난 것과도 같은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태풍을 뚫고 달려와준 친구들을 만났을 때 어찌나 기쁘던지요. 앞으로는 언제든 요청하고 언제든 도우러 가야겠습니다. 평소의 저는 도움 요청하는 것을 두려워했습니다.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곤란하게 만들까 봐서요. 제 코가 석자인 입장에서 너무 많은 것을 두려워했던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마음에 새겨봅니다. Help me, if you can!
제가 좋아하는 장르인 포스트 아포칼립스 영화에는 종종 새로운 세계의 구원자가 등장하곤 합니다. 그들은 모두를 새롭고 평화로운 세계로 인도합니다. 비록 자신들은 그 세계로 진입하지 못할지라도요. 혹은 한 사람의 구원이 아니더라도 작은 물방울들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영화 클라우드 아틀라스(Cloud Atlas, 2012)의 명대사입니다.)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사건을 해결해 나갑니다. 여러분은 올 한 해 동안 어떤 도움을 받으셨으며, 어떤 도움을 주셨나요? 구원이나 구세주의 등장을 말하다가 말미에 현실 세계의 이야기로 돌아오긴 거창하지만요. 다시 만난 (가짜 미래의) 세계는 어떠셨나요? 그리고 새로운 일 년엔 어떤 일들을 기대하고 계시나요? 2022년의 주고 받은 도움에 감사하며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해봅니다.728x90'영화리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데쓰 프루프/줄거리/후기/결말/머슬카액션/액션영화/타란티노 (0) 2023.04.03 거북이는 의외로 빨리 헤엄친다/줄거리/후기/결말/코미디/스파이/넷플릭스/우에노쥬리/일본영화 (0) 2023.04.03 터커 & 데일VS 이블/줄거리/후기/결말/코믹슬래셔/왓챠 (0) 2023.04.02 창문을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줄거리/후기/결말/북유럽영화/코미디영화 (0) 2023.04.02 강시선생/줄거리/후기/결말/홍콩영화/강시물 (0) 2023.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