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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포인트:9/11 그리고 테러와의 전쟁 (하),/줄거리/후기/결말/알카에다/911테러/넷플릭스/다큐멘터리다큐멘터리리뷰 2023. 5. 21. 15:00728x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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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닝 포인트, 2021 1. 터닝 포인트: 알 카에다는 왜 미국을 테러 대상으로 삼았나
알 카에다와 미국의 관계는 아주 오래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자헤딘, 이슬람 무장세력의 탄생
과거에 러시아 제국은 해양진출을 위해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했고, 이를 저지하기 위해 영국에서는 이란과 아프간에 무력 간섭을 하였다. 그 영향으로 소비에트식 교육을 받은 군인들이 연수를 받은 후 들어와 소련식 공산주의를 전파하게 되었고, 종교적 색채가 강한 아프간의 향촌에서는 이에 반발심을 갖게 된다.
제2차세계대전 후 소련은 아프간에서 자신들을 돕는 정권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아프간 내에서는 친소련 세력인 정부군과 반군의 내전이 발생하는데 이들 반군세력을 무자헤딘의 시초라고 본다. 무자헤딘이 소련에 맞서싸웠고 소련과 아프간의 무자헤딘 사이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무자헤딘은 성전을 위해 싸우는 전사라는 뜻이다. 무자헤딘은 나중에 서방세계에 맞서 이슬람 정신을 전파하려는 무장 단체를 지칭하는 단어로 의미가 확대된다. 흔히 알려진 탈레반, IS, 알 카에다 등이 무자헤딘에 포함된다. 차이가 있다면 탈레반은 지역 군벌에 가깝고 IS나 알 카에다는 원래부터 테러를 위해 조직된 집단이다.
1979년부터 1989년까지 십년간의 전쟁동안, 미국은 소련의 공산주의 진영 확대를 견제하며 아프간의 반군 세력을 지원했다. 사우디 아라비아와 파키스탄도 무자헤딘 지원에 동참했다. 두 나라의 지원은 탈레반 세력을 확대시키는 전초가 된다. 무자헤딘들은 협곡이 많은 지형을 활용하여 게릴라 전술로 소련군에 대항했다. 결국 미국과 이슬람 계열 국가들의 지원에 힘입은 무자헤딘의 공격에 소련은 10년동안 만오천명의 희생자를 내고 1989년 2월, 아프간에서 철수한다. 소련이 물러났지만 무자헤딘은 전쟁을 멈추지 않았고 아프간의 친소련 세력인 나지불라 정부의 버팀목이던 소련이 결국 붕괴한다. 소련이 붕괴하고 나서 들어선 러시아는 나지불라 정부에 대한 지원을 전부 중단했다. 나지불라 정권은 고립되었고, 1992년 카불을 공격당해 무너진다. 그 후 무자헤딘 수장 라바니를 대통령으로 하는 아프간 이슬람국 정부가 정식으로 수립된다. 그런데 문제는, 무자헤딘 사이에서도 자신의 거점을 기준으로 한 민족별 세력이 나뉘는 것이였다.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된 아프간은 민족(부족)의식이 매우 강한 나라였다. 다른 군벌들은 라바니 정부를 인정하지 않게 되었고, 내전이 다시 발생한다. 라바니가 이끄는 자미아트-이 이슬라미, 파슈툰계의 굴부딘이 이끄는 히즈브-이 이슬라미 세력으로 나뉘고 많은 군벌들이 라바니와 굴부딘 사이에서 이리 붙었다 저리 붙었다 하며 끊임없이 내전이 벌어졌다. 이때 전쟁에 지친 민중에게 내전 종식과 나라 안정을 약속하며 등장한 단체가 탈레반이다.
탈레반은 '학생들'이라는 뜻으로 파슈툰계가 이끄는 단체이다. 처음에는 이들도 상식적인 수준의 종교 율법을 적용했으나 점점 자신들의 전통 교리인 파슈툰왈리를 어겨가며 여성 인권을 탄압하는 것으로 변질된다. 변질되기 전의 탈레반은 민중들의 지지를 얻으며 많은 군벌들이 협력하게 되고 세력이 커진다. 그리고 1996년 마침내 탈레반이 라바니 정권을 무너뜨리고 공식 정부가 된다. 탈레반에 반대하거나 종교적으로 융합될 수 없는 무자헤딘의 다른 세력들은 북부 동맹을 결성하게 된다. 이 시기의 내전이 궁금하다면 크리스 햄스워스가 출연한 영화 12 솔져스에 나온 북부 동맹과 미군의 연합 작전 묘사를 보면 된다.
미국의 지원으로 탄생한 알 카에다
한편, 미국의 CIA로부터 지원을 받아 성장한 무자헤딘 중 이슬람 극단주의자인 오사마 빈 라덴을 수장으로 한 테러 집단이 탄생했는데, 이 집단이 바로 알 카에다다. 알 카에다는 '본부, 근원'이라는 뜻으로 주로 사우디 아라비아의 와하브 파에서 영향을 받은 이들로 구성되어 있다.
소련이 해체된 후, 테러 세력인 무자헤딘들은 본국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오갈 데 없는 신세가 되었다. 이들은 주로 모로코, 이집트 등 북아프리카 아랍계 국가 출신이였는데 이슬람 원리주의자에 무력 집단인 그들을 본국의 독재집단은 환영하지 않았다. 당시 아랍계 국가들은 이슬람 원리주의와 아랍 민족주의의 갈등을 겪고 있었다. 전쟁을 경험한 무장세력의 국제 미아들은 빈 라덴의 알 카에다로 모여들게 되었다.
1990년 이라크는 쿠웨이트를 침공하고, 쿠웨이트를 지지하는 미국이 참전하면서 걸프전쟁이 발생한다. 이라크는 석유 문제를 내세우며 쿠웨이트 침공을 정당화하지만 석유 문제와 더불어, 해안선 확장, 이란-이라크 전쟁으로 피폐해진 국내 상황 환기 등 복합적이고 전략적인 이유로 쿠웨이트를 침략했다는 설이 지지를 얻고 있다. 이라크의 후세인은 소련의 지원을 기대하지만 소련은 이라크를 지원할 수 있는 국력이 없었다. 사우디 아라비아는 이슬람의 두 성지가 속한 곳이였는데, 처음엔 미군의 주둔을 거절한다. 그러나 자국의 방위에 위협을 느끼자 미군과 다국적군의 주둔을 허용한다. 걸프전에서 사우디 아라비아에 무자헤딘을 제공하려던 오사마 빈 라덴은 사우디 정부로부터 거절당한다. 빈 라덴은 이에 실망하여 사우디 정부를 비난한다. 그리고 그는 사우디에서 추방당해 수단으로 가게 된다. 이후에도 미군은 계속 사우디에 주둔하게 되고 빈 라덴은 반미주의 노선을 내세운다. 이로 인해 알 카에다는 미국을 테러 대상으로 삼고 겨냥하게 된다.
다시 정리하자면
1. 소련(당시 러시아제국)과 영국의 아프가니스탄 간섭
2.소련의 영향을 받은 공산주의자 아프간 군인들 고국으로 복귀
3.공산주의의 확산에 반대하는 향촌 세력 확대
4.소련의 아프간 내정 간섭
5.반군 세력 무자헤딘과 친소련 정부군 간의 내전발생
6.소련과 무자헤딘의 전쟁 1979
7.서방세계의 무자헤딘 지원, 오사마 빈라덴의 알 카에다 등장 1988
8.소련의 철수 1989
9.이라크-쿠웨이트의 걸프전 발생 1990
10.미국과 다국적군의 쿠웨이트 지원/오사마 빈 라덴의 반미주의 노선 등장 1991
11.반군의 라바니 정부 수립 1992
12.아프간 무자헤딘 간의 끊임없는 내전
13.내전 종식을 위한 탈레반 세력 등장 (이후 극단적인 이슬람 원리주의자로 변질)
14.탈레반의 라바니 정부 수복 1996
15.반 탈레반 무자헤딘들의 북부동맹 결성과 걸프전 종전 후 무자헤딘들의 알 카에다 합류
친소련 반대세력 무슬림 = 무자헤딘(반공산주의/이슬람원리주의)
무자헤딘={알 카에다(테러집단), 탈레반(아프간 지역 군벌)}
무자헤딘 중 탈레반=>아프가니스탄 정부 수립
무자헤딘 중 반 탈레반=>아프가니스탄 북부 동맹
무자헤딘 중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무자헤딘=>알 카에다에 흡수
그러니까 결국 처음에는 냉전시대의 영향으로 전쟁을 겪은 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의 지원 속에 무장세력 무자헤딘이 탄생하고 이 속에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섞여 있었으며, 알 카에다도 이때 등장한다. 냉전 시대가 저물며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잉여 무자헤딘들은 알 카에다에 흡수된다. 중동에서 걸프전이 발생하고 미군이 중동 지역에 주둔하게 되자 알 카에다는 서방세계의 중동 개입에 반발하고 반미주의 노선을 펼친다.
2. 9.11 테러와 미국의 전쟁 선포
알 카에다의 9.11 테러
당시 사우디 정부는 미국에 알 카에다의 테러를 경고하지만, 미국은 알 카에다를 만만하게 생각하고 미국만을 겨냥해 테러를 일으킨 것이 아니기에 방심한다. 1997년, 알 카에다는 케냐와 탄자니아에 위치한 미대사관을 공격하고, 예멘에 주둔한 미 해군에 자폭 보트를 보내 테러를 일으킨다. 그리고 2001년, 9월 11일 알 카에다의 미국 본토에 대한 테러가 시작된다.
전편에 서술한 바와 같이 알 카에다 조직원들은 미국에 입국하여 4대의 민간항공기를 납치한 다음 의도적으로 미국의 중요한 건물에 충돌한다. 쌍둥이 빌딩으로 유명한 세계무역센터를 비롯해 국방부 펜타곤을 공격하였으며 워싱턴으로 향하던 항공기는 승객들의 저항으로 테러가 무산되지만 정황상 국회의사당이나 백악관을 공격하려고 한 것으로 추측된다.
9.11테러에 대한 내용은 전에 작성한 이 글 참고.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
다시 다큐멘터리의 내용에 초점을 맞춰보자. 당시 미국의 대통령이였던 조지 부시는 알 카에다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이들 세력을 지원하는 아프간의 탈레반을 축출하기 위해 아프가니스탄과의 전쟁을 시작한다. 미국은 탈레반에 맞서 싸우는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 북부 동맹을 지원하고, 파키스탄의 영공 사용권을 얻어낸다. 특수부대 그린베레, 네이비씰, 델타 포스 등이 투입되어 아프간을 공격하였다. 그리고 12월 탈레반 정권은 거의 끝이 난다.
3. 실체없는 테러와의 전쟁
미국의 이라크 전쟁 선포
관타나모 수용소 시설 미국은 테러의 배후에게 보복하기 위해 막대한 포로를 잡아온다. 심지어 부시 내각은 포로들을 고문하여 테러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기 위해 관타나모에 포로 수용소를 만든다. 관타나모는 미국이 쿠바에게 영구 임대한 곳으로, 사실상 미국의 영토에 가깝지만 미국의 인권법이 적용되지 않는 법의 사각지대이다. 부시 내각은 제네바 협약을 피해 포로들에게 고문하기 위해 관타나모로 그들을 데려온다. 그런데 현상금이 걸린 수배에 무고한 민간인들이 대거 섞여 잡혀들어온다.
미군에게 포획된 알 카에다 요원 모든 옷을 벗기고 종일 발가벗겨 놓기, 다리를 뒤로 꺾어 팔다리를 묶어두기, 수일동안 잠 안 재우기, 혹한에 노출시키기, 물고문 등 세계2차대전 시기의 중공군의 고문을 적용하여 포로들의 인권을 유린하였다. 포로 중에는 테러와 아무 관련이 없는 민간인들이 많았으며 대부분은 혐의 입증이 되지 않았다. 심지어 포로들은 본국으로 송환되지 않고 제 3국으로 추방되었으며, 언어도 통하지 않는 처음 가본 나라에 강제로 보내졌다.
그러나 부시 내각은 테러 첩보 수집에 혈안이 되어있었고 자국민을 대상으로 한 감시와 도청 또한 법적으로 위법이 아닌 상태였다. 이때 파키스탄에서 체포된 리비아인 이븐 알 새이크 알 리비는 고문을 못 이기고 허위자백을 하게 된다. 그는 강압을 못 이기고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에서 생화학무기를 만들고 있다고 말한다. 이후 알 리비는 자신이 고문을 못 이겨 조작한 허위정보라고 번복했지만, 미 당국은 무시한다. 당시 미국의 국무장관인 콜린 파월은 이라크에 대량 살상 무기가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고 공표한다.
전 국무장관 콜린 파월 부시 내각은 알 리비의 자백을 토대로 이라크에 대한 전쟁을 선포한다. 이란, 쿠웨이트에 이은 미국과의 전쟁으로 인해 이라크는 완전히 황폐해진다. 10만 명의 민간인들이 전쟁으로 인해 사망한다.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많은 전문가들은, 부시 내각이 의도적으로 알 리비의 허위자백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과 일치하여 받아들였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미국과 이라크는 이란과 이라크 전쟁 때와는 달리 외교 관계가 크게 악화되었으며, 사담 후세인은 미국이 원하는 대로 하지 않았다. 사담 후세인은 미국의 석유사업 요청을 거부하였으며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경제보복을 시작한다. 이후 이라크와 쿠웨이트 사이에서 걸프전이 발발하자, 미국은 쿠웨이트를 지원한다. 그리고 9.11 테러가 발생한 후 사담 후세인과 이라크를 공격할 명분이 생긴 것이다.
결국 사담 후세인은 처형되지만, 부시 내각이 확신하여 공표했던 사담 후세인의 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는다.
이라크에서 대량살상무기가 발견되지 않았다는 정부의 공표에 기자들은 되묻는다. 분명 콜린 파월 장관이 대량살상무기의 위치를 파악했다고 하지 않았느냐고. 하지만 정부는 이전의 확신에 차있던 발언을 부정하며 가능성에 대해 얘기했다고 주장한다.
4. 터닝 포인트: 전쟁에 대한 감상
사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것이 두번째다. 처음에는 9.11 테러에 대한 호기심으로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9.11 테러는 2001년,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일어났기에 극단적인 무슬림 테러단체, 그리고 빈 라덴에 의해 일어났다고만 알고 있었다. 오히려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했다는 인상이 뚜렷해서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와 유사한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항공기가 두번째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날아와 부딪히는 장면을 보는 순간, 영상 속에서 장난감처럼 작은 비행기로 인해 건물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 너무 이상했다. 저 안에 수백명의 사람들이 갇혀있고, 많은 이들이 죽을 것을 알면서도 고통에 못이겨 꽃잎처럼 떨어지다니. 대규모 사상자가 나온 사건은 때론 그 수치가 너무 한명 한명의 무게에 비해 얄팍하다.
또 놀란 것은 알 카에다의 미국 테러 이유다. 알 카에다의 미국 테러는 자신들의 이슬람 국가의 주권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물론 극단적인 강경파 무슬림들을 우리는 당연히 이해할 수 없지만, 세계대전부터 이어온 외세의 간섭을 피하고 싶은 마음이 식민지의 아픔을 겪은 우리의 역사에 빗대면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많은 생각이 드는 것은 전쟁 자체에 대한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허무하게 죽어가는 것에 비해 국가, 민족, 집단이 표방하는 전쟁의 명분은 너무 비합리적이다.
소련은 자신의 영향력을 높이고 이권을 위해 아프간을 침공했다. 미국은 자신의 영향력과 이권을 위해 아프간을 지지했다. 아프칸의 무자헤딘들은 자신의 세력 기반을 위해 서로 싸웠다. 이라크는 석유 이권을 위해 쿠웨이트를 침략했다. 미국은 석유 이권을 위해 쿠웨이트를 지지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주권을 위해 미군을 받아들였다. 알 카에다는 이슬람 세력의 강화와 결속을 위해 미국을 약화시키려고 테러를 일으켰다. 미국은 테러에 대한 보복을 위해 시민들의 자유를 침해하는 헌법을 만들고, 아프간의 탈레반을 침공했다. 반탈레반 무자헤딘은 자신들의 영향력을 위해 미국과 동맹했다. 미국은 석유 이권을 위해 이라크를 침공했다.
이 모든 결정 중에서 사람이 죽고 사는 것에 대해 우위를 선점할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역사 속 많은 전쟁사를 살펴보면, 만명 쯤은 아무렇지 않게 죽어나간다. 만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내가 알고 있는 한 사람이 목숨보다 가볍다. 그런데 심지어 이런 일들이 현재도 일어난다. 명분, 신념과 같은 실체없는 실낱같은 관념들에 의해 산 사람들이 죽어간다. 어제의 적은 오늘의 동맹이 되고 오늘의 동맹은 내일의 적이 된다. 어제의 침략자는 오늘의 피침략자가 되고 오늘의 피침략자는 내일의 침략자가 된다.
최근에 전쟁, 테러에 대한 관심이 많이 생겨 많은 전쟁 영화를 보았다. 영화 서부전선 이상없다에서는 제1차세계대전의 독일군이 등장한다. 소년병들은 아무 것도 모른채 들떠서 자원입대한다. 끝없는 참호전 후에 참호가 무너져 친구들이 죽는다. 내일 휴전 선언을 하는데, 사령관은 휴전할 생각이 없다. 그래서 휴전 개시 시각 전까지 적과 싸운다. 그리고 휴전 개시 시각이 되기 전에 주인공은 죽고, 주인공이 쓰러지자마자 휴전이 시작된다.
전쟁은 늘 가장 높은 곳에서 시작되지만, 인간은 늘 가장 낮은 곳부터 쓰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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